2047년 3월의 서울은 안개가 짙었다.
교통 드론들이 안개 속을 헤집고 다녔고, 빌딩 외벽의 광고판들은 각자의 언어로 쉼 없이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오늘따라 눈에 걸렸다.
[리멤버리 — 당신의 소중한 기억, 안전하게 보관합니다]
김재원은 그 광고판 아래 카페 창가에 앉아 콜드브루를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창밖의 광고를 바라보는 눈빛이 고요했다. 너무 고요해서 오히려 이상한 눈빛이었다.
그의 왼쪽 귀 뒤에는 작은 인터페이스 포트가 박혀 있었다.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단자였다. 2031년부터 보편화된 이 장치는 이제 성인 인구의 73퍼센트가 이식한 표준 기기였다. 기억을 백업하고, 감정 데이터를 분석하며, 원하는 기억을 꺼내 재생하는 것이 이 시대의 일상이었다.
김재원은 포트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작고 차가운 금속 감촉이었다.
3년 전 그는 리멤버리 소속 기억 감정사였다. 사람들이 거래소에 내다 팔거나 사고 싶어 하는 기억의 가치를 감정하는 직업이었다. 초등학교 첫날의 기억은 얼마, 첫사랑의 기억은 얼마, 죽은 가족과의 마지막 식사는 얼마. 그것이 그의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자신의 기억을 열어봤을 때 무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그냥 꿈인 줄 알았다. 기억은 완전하게 보였다. 유년기의 기억, 학교 기억, 직장 기억. 다 있었다. 그런데 계속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딘가에 빈 서랍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열어야 할 서랍이 있는데 없는 것 같은, 꺼내야 할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 같은 감각.
재원은 자기 기억을 감정했다. 직업병이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2년 6개월 치의 기억이 지워져 있었다.
본인도 모르게.
카페 창문에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재원은 빈 컵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3년 전, 리멤버리를 그만둔 이유를 자신은 오랫동안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일이 싫어졌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기간 동안 무언가 있었다.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무언가가 지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지우기는 본인이 동의한 것이 아니었다. 동의서에 서명한 기억이 없었다. 아니, 있어야 할 그 기억 자체가 없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재원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받았다.
"김재원 씨죠."
여자 목소리였다. 낮고 또렷한 목소리.
"누굽니까."
"저는 아이다라고 해요. 만나서 말씀드리기가 어려운 처지라서 이렇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재원은 잠시 말이 없었다.
"무슨 일로요."
"2044년 11월부터 2047년 4월까지, 2년 6개월의 기억에 대해서 알고 싶으시지 않으세요?"
심장이 단단하게 내려앉았다. 재원은 창밖을 봤다. 리멤버리 광고판이 빗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그걸 압니까."
"저도 그 기억들을 갖고 있거든요. 일부분이지만."
재원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말씀드렸잖아요. 아이다예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당신의 기억이 왜 지워졌는지는 알아요. 당신이 알아선 안 되는 것을 봤기 때문이에요."
빗소리가 커졌다. 재원은 천천히 말했다.
"만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