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엽, 한양 북촌 어귀에 편액 하나가 걸린 작은 집이 있었다. 편액에는 '묵향재(墨香齋)'라 쓰여 있었으되, 그 글씨가 어찌나 절묘한지 지나는 이들이 절로 발을 멈추고 올려다보곤 하였다. 글씨를 쓴 이는 집주인 노인 정철원(鄭哲源)이었다.
정철원은 젊은 시절 승문원에서 문서를 다루던 이였으나, 오십이 채 되기 전에 홀로 벼슬을 내놓고 이 작은 집에 틀어박혀 오로지 글씨만을 써왔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일러 '묵치(墨痴)', 곧 먹에 미친 자라 불렀다. 그는 그 말을 욕으로 듣지 않았다. 오히려 빙그레 웃으며,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한 가지를 제대로 하겠느냐" 하고 받아쳤다.
그의 글씨체는 조선 팔도에서 알아주는 것이었다. 왕족의 비문을 청하는 이, 사찰의 현판을 부탁하는 이, 가문의 족보 서문을 맡기려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정철원은 함부로 붓을 들지 않았다. 의뢰인이 아무리 많은 금을 쌓아놓아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늘 말했다. "글씨는 사람의 마음을 받아 적는 것이오. 마음이 탁한 이의 글은 내 쓸 수 없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