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서도 한 시간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일어서지 못했다. 모니터는 꺼져 있었고, 서랍 안에 넣어두었던 물건들은 종이 박스 하나에 다 들어갔다. 마우스 패드, 머그컵, 칫솔. 3년을 다닌 자리치고는 너무 가벼운 무게였다.
이재윤은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계단을 택했다. 지하철역 방향의 출구가 아닌 반대편 골목으로 나왔다. 이유는 없었다. 아니, 있었다. 누군가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수고했어요, 잘 지내요, 라는 말을 들을 자신이 없었다. 그 말에 대답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았다.
박스를 옆구리에 낀 채 걸었다. 10월의 저녁은 생각보다 빨리 어두워졌다. 가로등이 하나씩 켜졌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지하철 입구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재윤은 그 흐름을 거슬러 7번 출구 앞 횡단보도 앞에 멈췄다. 신호는 빨간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