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뽑지 않은 채로 얼마나 걸었는지, 세린은 기억하지 못했다.
안개 지대에 들어선 지 사흘째였다. 발밑의 땅은 두 개의 세계가 겹쳐 있었다. 한 발을 내디디면 마른 돌바닥이 느껴지다가도, 다음 발에는 물기 어린 이끼가 짓눌리는 감각이 왔다. 눈을 뜨면 회색 안개 너머로 이쪽 세계의 폐허가 보이고, 눈을 반쯤 감으면 그 아래로 다른 세계의 풀밭이 희미하게 비쳤다. 두 세계의 경계가 얇아진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무엇이든 반씩만 실재했다.
그래서인지 기사단 사령관의 목소리도 반쯤만 귓가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