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 기슭에서 뻗어 내려온 바람이 무림맹 대회장의 깃발들을 일제히 흔들었다. 오색 기치가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아래, 수만 명의 강호인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십 년에 한 번 열리는 천하제일고수대회(天下第一高手大會). 강호의 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 대회장에서, 누구도 그 두 사람이 만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진무혁(秦武赫)은 관람석 가장자리에 몸을 낮추고 있었다.
삿갓을 눌러쓰고, 회색 포의(布衣)로 몸을 감싼 그는 언뜻 보면 그저 구경 나온 한량 같았다. 하지만 눈매만은 달랐다. 저잣거리에서 먹을 것을 나눠주던 바로 그 눈—사람들이 '귀신손'이라 부르며 숭앙하던 의적(義賊)의 눈이었다. 포부자(捕府者)들의 수배 방(榜)에 이름이 오른 지 삼 년째. 그는 강호 전역을 떠돌며 탐관오리들의 창고를 털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눠주었고, 관군은 그 뒤를 끈질기게 쫓았다.